기자라는 직업이 존경받는 시절이 있었다.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폭로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1987'을 보면, 당시 정부에 의해 희생된 대학생 운동가(故이한열)에 대해 메이저 신문사(동아일보)에서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보도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전국적인 시민운동까지 벌어지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참 멋진 모습이었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이일을 당시 신문사가 외면하고 감추며, 정부편향적인 글로 위장했다면 당시 정권이 조금 더 늦게 무너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처럼 진실을 밝히는 등대로서, 일반적인 시민 한 명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기자를 통해 발행된 한 편의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위 사례는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다. 한 편의 기사로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시대에, 유사한 형태로 놀라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왔는지를 나열한다면 책 한 권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을 존경하기도 하고, 떄로는 두려워하기도 하며, 계속해서 그 일들을 힘써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변화 1. 자본주의와 정치권력>
하지만, 작금의 자본주의 시대 아래에서, '돈'의 논리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때문일까? 처음에는 기사를 통해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던 신문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말하면 '광고'를 받기 위해 유수 대기업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돈을 내지 않으려는(광고를 싣지 않으려는) 기업들에는 반협박조로 광고비를 뜯어가는 일도 동시에 수행했다. 이렇게 기업과 결탁하게 되면서, 배고픈 소크라테스 같은 기자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배부른 기사들이 많아지게 됐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메이저 신문사들을 필두로, 정치권력의 논리에 의해 편향된 기사를 내고 수없이 많은 염문을 뿌렸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더 이상 '기자'와 '기사'의 진실을 믿지 못 하게 됐으며, 이 기사에 숨겨진 의도나 세력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연예인들의 스캔들 사건이 터질 때면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나 정재계 비리에 대한 사건 등이 따로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식이다.
<변화 2. 인터넷 정보화 시대의 구독자 감소>
오프라인 신문은 그나마 지면에 한정된 광고영역과, '정기구독'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서 자생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균형이 많이 무너지진 않았다. 오히려 흔히 '필진'으로 불리는 기자들의 전문성, 특종 취재 능력, 기사의 정확성 등에 더 무게가 실려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문기사 또는 기자 자체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자가 되기는 여전히 힘들었고, 그들만큼 글을 쓰기는 더 어려웠으며, 기자들이 일반적인 대중들보다는 '지식인'이자 '양심'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 전국적인 인터넷이 도래하고, 수없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스마트해졌고', 비판 능력도 갖게 되었다. 수많은 정보를 조합해서 스스로 기사거리를 찾아내기도 하고, 비싼 인쇄기기 없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글을 남기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 따로 작은 '언론사'를 만들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매체(언론사)'와 '기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신문을 구독하던 사람들도 인터넷 세상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이러한 기사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문구독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기사 유료구독자는 줄어들었고, 점점 더 가속화되었다.
이제 기존 비즈니스모델 자생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매출은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상황에서, 언론사가 살아남으려면 조금 더 그들의 경제력을 보충해줄 수 있는 존재(대기업, 정치권력 등)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변화 3. 사용자의 기사 선택 방식의 변경: 네이버 포털>
여기에 마지막 기름은 부은 건, 공룡포탈의 온라인 뉴스, 기사 시장 평정이다. '네이버'에 메인으로 노출되기만 하면 엄청난 트래픽을 만들 수 있고, 인터넷 시대에서 '트래픽'은 곧 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언론사들의 기사는 트래픽을 모을 수 있는 데만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문제는 트래픽을 끌어오려면 결국 눈에 들어야하고, 이것들이 온갖 자극적이고 저질적인 제목과 내용의 기사를 양산하게 된 이유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네이버가 메인에 구독한 언론사 위주의 기사를 네이버 메인에 보여주고 있음에도, 이 기사들의 제목도 상당히 자극적이다. 하지만, 네이버 키워드 검색 이후 나타나는 수많은 뉴스들은, 모든 가십거리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오타나 비문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이런 기사에는 광고 배너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리고 이 광고 배너를 노출하고, 클릭을 유도함으로써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실 여부 확언없이 선점만을 위해 보도자료를 내거나, 허위&과장된 내용으로 보도하거나 하는 식의 일들이 비일비재 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지면 조용히 기사를 내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그간의 트래픽에 대한 보상은 이미 다 받은 채로), 더욱 더 이런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해당 기사의 대상이 된 단체(회사 등) 또는 개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기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켄텐츠에 가까운 기사도 많다. 연에&스포츠 중에는 TV 드라마 등의 일부 내용을 단순 소개하는 기사도 많다. 사람들이 드라마 내용을 공유하거나 검색을 많이 하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화면캡쳐 + 일부 줄거리를 텍스트로 적은 기사를 배포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사들을 클릭해서 보기 때문에, 더욱 이런 기사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들로 인해 사람들은 기사라고 해서 신뢰하지 않고, 단순히 기자라고 해서 존경하지도 않게 되었다. 기자를 낮잡아 부르는 "기레기"라는 용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대부분의 독자는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네들을 우리와 다른 집단으로 분류하여 욕하며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세상의 일이며, 실제 세상에서 기자를 만나면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펜촉이 내가 속한 일터나 공동체로 향하기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언론사, 기자는 다시 존경받을 수 있을까?
어두운 면이 있다고 해서 밝은 면을 모두 무시할 수 없고, 언론사와 모든 기자가 위와 같은 행태만 보이고 있지 않다. 분명히 지금도 펜을 통해 양심적인 훌륭한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사와 기자가 없다면 지금보다 더 밝은 세상이 되진 않을 것이다.(오히려 훨씬 힘든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기레기'라고 싸잡아 욕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우리 독자들도 자극적인 기사에 현혹되기보다 좀 더 의미있는 기사에 점수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언론 생태계가 어쩌면 이 변해가는 세상의 내홍을 겪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가장 힘들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면서도, 그들의 양심을 놓치 않는 적정선이 어디인지, 그곳을 향해 고민하고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다행인 건, 최근 오히려 퀄리티있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매체들과, 뉴미디어들에 유료구독까지 하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매체들이 적당한 역할을 수행해나갈 수 있는 환경들이 구축된다면, 다시 한번 스스로의 힘으로 정화되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한 기자정신이 있는 기자 한 사람의 숭고한 기사 한 편의 힘을 믿는 독자로서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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